1.
얼마전 아파트 재개발현장에서 철거중이던 건물이
도로를 지나던 버스 위로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다.
단 몇초 차이로 일상을 살아가던 시민들이 비명횡사하는
가슴 아픈 비극이었다.
갑자기 닥친 행운이나 불행은 언뜻 우연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우연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연은 언제나 예측가능한 필연에 다다른다.
'그때 그것만 안했더라면..
그때 그것만 했었더라면..'
절차가 무시되고 생략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반칙과 불법이 도사리고,
이는 결국 우연이란 이름의 탈을 쓴 채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다.
재앙은 필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2.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
도수처방안경 온라인 판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시즌1. 시즌2. 시즌3..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닥 놀랍지도 않다.
팔 다리가 잘려나가고 피곤에 쩔어 멘탈마저 철거된 마당에
하나 남은 썩은 몸뚱아리까지 밀어버리겠다고 불도저들이 들이닥치니
이젠 재개발 보상을 해달라고 아우성 치는 것 조차 힘겹고 눈물겹다.
우리를 보호해 줄거라 생각했던 국가는 없었다.
생계의 최종방어막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던 협회도 없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마다 봉기했던 것은 일반 백성이었다.
현재 우리들의 모습도 그렇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도 필연인걸까.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3.
지난 겨울이었다.
서울 말투를 쓰는 60대 중반 즈음의 노인 한 분이 들어왔다.
노인이라고 하기엔 젊고 중년이라고 하기엔 늙은.
허나 꼿꼿한 허리와 능수능란한 말투 속엔
실제 자기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었다.
"사장님이세요?
저는 손님은 아니구요.
제가 아주 좋은 정보를 하나 가져왔는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설명 들어보시고 사장님이 마음에 들면 하시고
마음 내키지 않으면 안하셔도 됩니다."
대체 뭘 설명하려는 걸까.
조상님 찾아주는 도인만 아니길 바랐다.
잠시 후 노인은 들고 온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갤럭시노트만한 크기의 전자계산기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진열장 위에 툭 펼치더니 호주머니에서 울퉁불퉁하게 생긴
금속재질의 물건을 꺼내 그 위에 툭 떨어뜨렸다.
" 8.5그람!!
가끔 큰 거 걸리면 10그람 넘는 것도 나와요"
전자저울이었다.
그런데 저 콩알만한 돌맹이는 설마...
팔에 닭살이 돋으려고 하는 순간 노인이 설명을 이어갔다.
"사장님~ 이게 뭐냐면요.
이게 금니빨이에요.
손님이 금니를 가져오면 여기 나온 숫자대로 손님한테 돈을 드리면 돼요.
8.5그람이니까 8만 5천원.
그러면 제가 한 달 뒤에 금니 수거하면서 사장님께 돈을 두 배로 드릴거에요"
아.. 씨..부.. 알..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를 무시한건가.
내 직업을 무시한건가.
아니면 내 동네를 무시한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건전한 정보는 아니지 싶었다.
"아니 이게 좋은 정보인가요?
여기 안경원인데 어떻게 손님들한테 (드러운) 이빨을 받아요.
(혹시 담벼락에서 틀니 압수하는 가루세요? 라고 순간 물을 뻔했다)
그리고, 시력검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빨 던지면서 오천원만 더 쳐줘~ 하면 난감할 거 같은데요.
그럼 금니빨 산다고 창문에 써붙여놔야 하나요?
솔직히 민망하네요ㅋㅋ"
노인은 단호했다.
"오홍~ 부끄러울 거 하나 없어요.
우리가 바깥에 입간판 하나 세워드리고
저울이랑 핀셋 다 드리고 갑니다.
사장님은 그냥 가만히 앉아있다가
손님들이 들고오는 금니 무게만 재면 끝!!
조용히 돈 주고 돈 받는거에요.
이거 은근 재밌어요.
요즘은 노인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많이 가지고 와요"
'하아... 입간판이라니......
현수막 한 번 걸어본 적 없는 가게에 무슨.....
급전 땡기려고 자기 이빨 뽑아오는 사람들도 있나'
정중히 거절했다.
내 자존심이 다친 만큼 노인의 자존심도 있었기에
다음에 기회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애써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노인은 집요했다.
"허허~~ 이 자리가 딱인데..
내가 이 일만 몇십년 하고 있는데 내 보는 눈이 정확해요.
사장님 자리가 최고에요.
사장님이 안하면 난 요쪽라인 어느집이든 기어코 들어갑니다"
(네. 제발요. 빨리 나가주세요.)
점포 대부분이 식당들인데 면박이나 안당하면 다행이지 싶었다.
"사장님은 저 놓치는 순간 큰 후회 할거에요.
이거 은근 돈 된다니까 안믿으시네~
진짜 안하실거죠?"
"네...^^"
미련이 남았는지 문을 열고 나가면서 한마디를 더 던진다.
"사장님~ 요즘은 정보가 돈이에요.
남들보다 먼저 해야해요.
남들 다 하는 거 나중에 따라해봐야 소용없어요.
으이구~ 굴러들어온 복을 놓치네.
그럼, 안녕히 계슈~~"
나는 그날 이후 세상물정 모르는 정보부재의 인간이 되어있었다.
팩트였다.
나는 워낙 아날로그하여 정보에 둔감한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날 보기좋게 노개시를 했다.
그날 이후 노개시를 할 때마다
그냥 금니라도 팔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인터넷에 금니 시세를 검색해보았다.
역시.. 세상이 변했다.
온라인으로도 금니를 사고 팔고 있었다.
이런건 의료법에 안걸리나 싶었다.
'예전에 치과에서 금니 두개 뺐었는데 달라 할걸...
대빵 큰 어금니였는뎅..'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느낌이 들었다.
4.
[장용도수 7.50
교정시력 0.3
처방권장도수 8.50
최고교정시력 0.5
평생 같은 도수 고집]
저시력이지만 도수 한단계 변화에 엄청난 예민함을 가진 50대 목사.
나이가 50중반을 향해가니 당연히 노안이 왔고,
현재 쓰는 안경으로는 멀리도 잘 안보이고 가까운 곳도 불편한 상태.
소위 중간거리에서만 만족도가 있는 애매한 안경.
당연히 시력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초점 설명.
하지만 다초점 필요없고 무조건 한단계만 올려달라고 고집부리니 본인 뜻대로 해줌.
그러다 안경 맞춘지 석달 정도 지난 후 찾아와서
뜬금없이 하는 말.
"사장님을 믿었는데 사장님한테 너무 실망했습니다. 아멘~"
"Why?"
"눈이 너무 불편하잖아요!!!
가까운 곳도 안보이고 멀리도 안보이잖아요!!"
몇 번을 또 다시 설명해줘야 하나 싶었다.
"목사님?
도수처방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처방자와 피처방자간의 커뮤니케이션..
오케?"
인상을 찌뿌리며 버럭 화를 낸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믿음을 드렸으면
사장님도 제게 믿음으로 보답해주셔야 하는데
너무 실망스럽다는거에요.
왜 내 눈을 편하게 못해주냐구욧!!!"
어이없었지만 꾹꾹 참으며
" 아니 목사님이 원하는대로 해드렸는데 지금와서 무슨...
또 그래서 그 때 다초점렌즈 설명을 해드렸잖아요"
갑자기 사자후를 토한다.
"몰라요. 제가 언제 그랬어욧!!
그리고 다초점은 비싸쟈나욧!!!!!!!!!!!""
헐...
나더러 어쩌라고.
다초점 공짜로 해주라는 소린가?
'오~ 주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젭알 제게 사탄마귀를 보내실 지언정
마캥이는 사절합니다. 아멘~'
도저히 대화가 이어지질 않아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목사님? 제가 무슨 이유로 목사님 눈을 불편하게 만들겠어요.
제가 목사님 안경 만들면서 주님께 두손 모아 기도드렸어요.
아멘~
아무래도 제 믿음이 부족한 것 같으니
목사님이 우리나라에서 시력검사 가장 잘하는 병원에
찾아가신 후 처방전을 받아다 주세요.
그대로 다시 해드릴테니 대신 딴소리 하기 없기..콜? ( 퉤퉤퉤).."
"그럼 비용은요?
돈 들어가잖아욧!!!"
(아오~ 이런 ㅆㅂㄴ을 봤나)
"제가 부담한다고요~ㅋ"
갑자기 표정이 낫낫해지면서 말이 부드러워진다.
"아니 그럼.. 사장님이 손해...."
"네. 신경쓰지 마세요 ㅎ"
며칠 후... 처방전을 가져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도수는..
그! 대! 로!
그러면서 쓱 내민 안경은 아주 오래전에 맞췄던
다른 안경을 내미는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사탄 마귀를 봤나... 아멘~)
안과 갔더니 분명 그대로 쓰라 했을 것이고
일단 처방은 받아왔는데 바꾸나 마나란걸 알고
안경을 하나 더 맞출 요량이었던 것.
그 심보를 내가 모를 줄 알고 다른 테를 내미는 음흉한 기백에
놀라 자빠질 뻔 했지만 정신줄 부여잡고 당연히 거부.
"목싸님? 그 때 그 안경을 가져오셔야지용.
(이건 반칙이에요 ㅋㅋㅋ)"
똥씹은 표정을 지으며 안경을 다시 가져왔지만
그날 이후..
나를 바라보면 항상 상냥하게 방긋 웃으며 인사하던
목사부인과 목사 아들 딸들이 째려보면서
휙휙~ 지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하아.. 증말 동네 장사하기 힘들구만.
엇.. 시간이..
집에 가야겠다.
이만 퇴근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