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2 20:34

비오는 날 잡설

(*.42.140.150) 조회 수 890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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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이 없다.

마트에도 식당에도 병원에도 사람이 없다.

마스크를 쓴 채 우산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걸어가는 행인들도 각기 제 갈 길을 재촉할 뿐이다.


하루종일 비가 온다.

출근 전부터 하루의 일과가 그려졌다.

비가 오니 오늘 장사도 끝났다는 실망감보다 하루를 편히 보낼 수 있겠다는 안락함이 먼저 찾아왔다.

문득 마음의 핑곗거리가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구로 말하면 우천취소다.

취소된 경기는 다음날 연속해서 경기를 갖는다.

일명 더블헤더라고 한다.


하루에 경기를 두 번 치르면 선수들은 녹초가 된다.

하지만 경기를 이기면 육신을 짓누르는 피곤함도 금세 달콤한 활력으로 전환된다.

반면 지는 팀은 피곤함이 배가 된다.


문제는 비가 그치고 난 후다.

손님이 몰려오는 만큼 피곤함은 매출이란 보상으로 보전되고

비가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손님도 함께 그친다면 그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의 흐름을 봤을 때 그닥 긍정적이지는 않다.

연패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





2.

영화 기생충이 깐느에 이어 오스카까지 장악했다는 소식에 나라 안팎으로 연일 화제다. 

우리 영화계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굵은 획을 그을 만한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빈부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여러가지로 대비되는 미장센을 통해 끊임없이 조명했다.


햇볕이 따사로운 저택과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방역차에서 뿜어내는 소독연기와 창문을 열어 매운 연기를 알현하는 궁상맞은 호흡, 

집중호우에도 끄떡없는 부잣집 아들의 텐트와 물에 잠겨 가재도구가 둥둥 부유하는 반지하집,

환경이 남긴 수직적 냄새까지 감별해내는 예민하게 차별돼버린 후각,

위계를 통해 올라온 사다리 보다 더 깊고 낮은 어둠 속에서 리스펙을 외치는 완벽한 기생,  

삶을 마주하는 계획과 무계획까지..


새까만 구정물이 역류하는 변기위에 앚아 젖은 담배를 무는 제시카의 모습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남긴 비극을 담아내고 싶은

감독의 울컥한 의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봉테일다웠다.


기생충이란 동물은 다른 생물에 빌붙어 양분을 몰래 빨아먹으며 살아가는 반갑지 않은 생명체다.

기생충은 숙주를 통해 삶을 연명하면서 뻔뻔하게도 숙주에게는 어떠한 이로움도 가져다 주지않는

비가역적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를 숙주로 삼아 삶을 영위하는 기생충은 과연 누굴까.

진상일까?





3.

예측 가능하고 예방 가능한 진상은 회피나 계도가 가능하기에 기생충의 범주에서 제외한다.

단순히 대하기 불편한 고객을 모조리 진상으로 묶어버린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일이다.

드물긴 하지만 그러한 고객은 오히려 매니아스러운 충성고객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예단은 금물이다.


다만 급이 다른 절대진상, 즉 병적인 뇌를 가진 또라이들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분들은 진상 스킬이 거의 영업방해, 모욕, 폭력 등 범죄의 영역까지 진입한다.

한번 겪고나면 후유증이 오래간다. 

공권력이나 신앙심을 통해 벗어나는 것 외엔 이들을 물리칠 방법은 없다.


가격 후려치기, 제품 까탈부리기, 지인드립에 폭리드립은 진상들의 기본 무기다.

하지만 진성또라이들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처럼 기본 무기에 변종스킬을 더한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친한 척하면서 사장님 최고를 외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표정이 바뀌면서

사장님 개객끼 하는 사이코패스로 돌변하거나, 몇년 만에 방문해서 안경 코팅이 까졌다고

돈 물어내라는 등의 시간차 빽어택 공격을 일삼는 경우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마주하는 소리없는 고통.

이들은 기생충이 맞다.



 


4.

피부는 30대 같은데 표정은 10대 같은..

도저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길건너 교회가 이사가면서 함께 사라진 사람인데 문득 기억이 난다.

(언젠가 안경사 사이트에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이 어디로 사라진지 모르겠다)


암튼 바지를 배꼽 위로 올린 채 버스정류장 옆에서 심심하면 태극 8장을 하던 친구였는데

체격은 작지만 굉장히 몸이 다부진 친구였다.

혼자서 기합을 넣으며 덤블링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친 적도 있었다.

멍하니 창밖으로 녀석을 보는 게 하루의 낙이기도 했다.


어느날..

녀석이 갑자기 길을 건너와 매장 문앞에서 태극 8장을 하는데..

녀석과 눈이 마주칠까봐 시선을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리 깔아야 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와 다르게 절도있는 품새가 마치 나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바깥에서 보는 건 즐거웠지만 막상 부닥치기엔 두려움이 앞서는 존재였다.


왓 더 뻐억~


ㅆㅂ 설마 했는데..

진짜 문을 열고 들어오는게 아닌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지긋이 바라보면서 씨익 웃는데.. 

진짜 나랑 한판 붙고 싶어하는 눈빛이었다.


젠장~ 미스터태극도 아니고..;;

나도 똑같이 태극 8장을 보여줘야하나..

아님 팔씨름으로 종목을 바꾸자고 해야하나..


순간 녀석이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 

녀석의 팔뚝과 허벅지 피지컬을 훓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원래 미친놈은 늙지도 않고 힘이 워낙 세서 섣불리 건들어서도 안되기도 하지만

애는 체형이 마치 머리와 몸통이 붙어 있는 타이슨 같아서 진짜 멱살 한번 잡히면 맨땅에 꽂힐 것만 같았다.


당시 내가 어떻게 내보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오늘처럼 비가오는 날이면 가끔 녀석이 생각나기도 한다.


싸워서 졌으면 동네 창피해서라도 조용히 장사를 접었을 텐데..

뭔가 아쉽다.





5.

최근 새롭게 등장한 한 분이 또 있다.

이분은 대략 50대정도로 보이는데 올 때마다 털모자를 쓰고 온다.

아무말 없이 혼자서 매대를 둘러보다가 자기한테 어울리는 썬그라스를 하나

보여달라고 하는 게 주요 레파토리다.


처음에는 뭣모르고 골라줬는데..

그때마다 다음에 사겠다며 명함을 달라고 했다.


물론 그 분의 눈빛을 처음 보자마자 명함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안경닦이 한 장 주는 걸로 퉁 쳤지만 최근 이런 일이 대여섯차례 반복중이다.


한마디로 '명함빌런'이다.


올 때마다 명함을 달라는데..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찍는 것도 아니고 진짜 미치겠다.

다음에 또 오면 매장 주변에 흩뿌려져있는 대부 업체 명함을 하나 줄까 고민 중이다.


돌아오는 답변이 궁금해서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다른 세상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상대로 괜한 실험은 금물이지 싶다.


사고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6.

보수교육의 계절이 다가온다.

나는 보수교육의 문제점을 거론하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대답을 거부하고 회피했다.


문제해결에 대한 방법이 없는 건지 의지가 없는 건지

그들은 공론의 장에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고,

끝내 그들의 의지대로 끝까지 밀어부쳤다.

하나부터 열까지 현정부가 취하는 모습들과 일맥상통했다.


나는 공정과 정의라는 이상적인 아젠다를 기반으로 떼를 쓴 것도 아니었다.

상식적인..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피력했고 그들의 상식을 듣고 싶었다.


정책에 대한 호불호나 여론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보호법익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단순히 규제를 개혁한다거나 소비자를 위한다는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논리보다

시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선을 그어 달라는 뜻이었다.


일례로 도서정가제가 있다.

도서정가제는 소비자가 아닌 도서 시장을 보호할 목적으로 탄생한 법이다.

책은 되는데 콘택트렌즈가 안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안경테를 사면 안경렌즈가 공짜는 웬말인가.

차라리 안경렌즈를 사면 안경테를 공짜로 준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우리가 언제 5천원짜리 만노와  2만원짜리 수경을 지켜달라고 했었나.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급,판매,소비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찾아달라는 가격정책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란 말인가.

우리가 정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담합이라면 정부가 해주면 될 일이 아닌가.


단 한사람이라도 정부 인사들과 마주 앉아 대담하고 담대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 요구한 사람이 있었을까.


대한민국 안경사들은 정신적으로 의지할 숙주를 잃었다.


협회는...

왜 존재하는가.











하아..이렇게 장문을 쓰는데 몇몇 수리손님 외엔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ㅋㅋ

그래도 진상을 상대하는 것보단 낫다.


저번 글에 많은 익명의 선생님들이 댓글을 달아주셨다.

업계를 떠나라는 말씀이 주를 이뤘다.

떠나라는 말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게 들린 적은 살면서 처음인 것 같았다ㅎ

(그녀는 잘 사는지 모르겠다 )


일일히 댓글을 달아드리지 않았으나 늦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
  • ㅇㄹ 2020.02.12 21:03 (*.213.9.239)
    뭘 멀리서 찾아 안경계의 기생충 으똥 다미쳐가 있는데.... 문어벙 그건 지 수하 조국 얘기 만들어서 상탔는데 좋다고 박수치고 앉아있고~
  • 하루키꺼져 2020.02.12 21:25 (*.216.222.37)
    이 고인물에 단비같은 글 너무 좋아요 ㅜㅜ
    바쁘시더라도 한번씩 글 올려주세요
    근처면 맥주한잔 하면서 담소나누고 싶음 ^^
  • 자연인 2020.02.12 22:27 (*.111.13.226)
    으악똥과 다미쳐는 기생충보다 해로운 놈들임
    불량밧데리로 저수지 물고기 멸종시키려다 지들끼리 감전됨ㅋㅋ
    도매들도 다 욕함
    보수교육 부스비 많이 받아먹는다고 협회도 욕함
    나도 어디가서 안경사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쪽팔림
    글쓰신 분은 참 좋으신 분 같음ㅋㅋㅋ
    글도 재밌음^^ 추천~
  • 미친교육비 2020.02.13 11:32 (*.111.14.77)
    오늘 날씨도 흐림ㅠ
    보수교육 진짜 문제 많습니다.
    이제 바뀔 때도 됐죠.
    잘 읽었습니다.
  • 협회 2020.02.13 21:11 (*.100.100.78)
    과거와 현재을 구분해서 ㅡ
    2020년부터 협회도 회비 사용내역을 회원들에게 회계감사릉 받아야하고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운영을 해야해요.
    하는일도 없이 ㅡ ㅉㅉ
  • ** 2020.02.13 13:43 (*.250.204.74)
    좋은글 감사합니다.
  • ㅎㅎ 2020.02.13 14:59 (*.151.93.235)
    저번에 그분이신가요?
    이번에도 역시 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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