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검열과 편집장의 사퇴
이미 80년대 군사정권시절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보도지침과 같은 내부검열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월간 안경계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는 편집을 외주에 맡겨 진행했는데, 외주업체에서 타블로이드8면의 신문 대지를 만들면 그것을 복사해서 들고 협회로 들어가 협회장의 검토를 거쳐야 했다. 시간을 다투는 주간지 발행을 일일이 개인의 기사검열을 통하여 고쳐 발행하는 일은 일이 힘들고 귀찮은 것을 떠나 기자로서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많은 갈등을 했고, 결론적으로 이 건 아니라고 판단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일은 엉뚱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호시탐탐 그만둘 기회를 엿보는 사이 나보다 한발 앞서 편집장이 덜컥 사의를 표한 것이다. 당시 편집장의 고충이야 오죽하겠는가, 특히 막무가내로 주간지 대지를 자신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빨간 사인펜으로 죽죽 X표시를 해대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취재지시를 내리고는 하니 이야말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더 견디기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협회장이 출근하면 당시 사무총장과 홍보실장 주간지 팀장 등 간부사원들을 죽 불러들여 이런 저런 업무지시를 내리는데 이 과정에서도 일방적인 업무지시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는 했던 모양이다.
당시 편집장은 불교신문 쪽에서 오래도록 일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기업문화 자체가 이곳 협회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편집장이 공석이 되자 자연 편집의 책임은 내 차지가 되었다. 주간지라는 것이 매주 단위로 신문을 발행해야 하는데 당장 편집장이 공석이라 해서 주간지 발행을 미룰 수는 없었다. 해서 우리 두 명의 기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주간지 발행을 해 나갔다. 이미 한 차례 편집장이 나간 뒤 후임 편집장마저 손을 들고 나가버리자 협회에서는 공석인 편집장을 뽑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주간지 발행의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게 되었다.
보건복지부 로비사건, 발목을 잡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협회장과의 대면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워낙 카리스마가 있는데다 밀어붙이는 성격인지라 소신 있는 발언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뭐 가릴 것이 없었다. 편집장 대행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내가 아니면 주간지의 발행이 어려운 실정이었고, 성격상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보니 협회장 앞이라고 해서 굳이 소신을 굽힐 이유가 없었다. 뭐 그런 이유였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나는 생각보다 꽤 잘 적응했다. 그렇게 주간 안경사신문이 폐간되는 이듬해까지 약 1년 여간을 나는 주간지를 창간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발행했다. 처음 8면으로 창간된 신문은 그 후 12면까지 늘렸고, 광고수주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그 해 10월, 이른바 보건복지부 로비사건이 터졌다. 당시 협회에서는 4층 회의실에서 이사회가 열리던 중이었는데, 당시 검찰 관계자들이 들이닥쳐 협회장이 연행된 것이다. 이 일로 협회는 한동안 협회장이 공석인 가운데 비상체제로 돌아섰는데, 덩달아 주간지만 바쁘게 돌아갔다. 협회에서는 연일 대책회의가 열렸고, 옥중의 협회장은 사무총장과 실장 그리고 나를 옥중에서 직접 불러 업무지시를 내리고는 했다. 특히 발행주기가 빠른 주간지를 맡고 있던 나는 그만큼 자주 불려 다녔다.
사실 이 사건과 함께 안경업계는 다음해 2월 정기총회의 임원보선을 앞두고 무척 급박하게 돌아갔다. 당시 안경업계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들이 직접적으로 총회에서 협회장 선거를 앞두고 충돌하는 양상이었다.
이처럼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나는 협회를 떠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중차대한 시국에 개인이 사의를 표한다는 것은 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이 고비만 넘기면 그만두리라 하다가도 다른 일이 터지면 또 신문발행에 메 달려야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해와 이듬해 총회까지는 정말 일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난 팔자려니 생각하며 주간지 발행에만 신경을 썼다.
사실 상 이 시기 불과 1년여 기간 동안 내가 겪었던 일은 마치 10년의 온갖 풍파를 겪은 것만큼 나에게 많은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다. 물론 사전검열이라는 전대미문의 언론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개인이 좌지우지 하는 매체에서는 이런 간섭은 수시로 일상과도 같이 일어나는 일이다. 특히나 협회와 같이 협회장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조직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 나는 배우는 입장이라 안경업계의 정치적 이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우선 내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면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 후로도 나는 대로록이면 정치적인 입장에 철저하게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이 불가해한 협회라는 조직에서 15년 동안 근무하게 된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