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가난했었다.
결국 형은 빨리 돈을 벌기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들어갔다.
고생하는 것에 비해 형이 그다지 돈을 많이 벌지 못 하는 걸 본 나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큰 안경원을 운영하며 그 당시 친척 중에 제일 부자였던 큰 아버지.
그 분이 내게 안경광학과를 권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내 모의고사 성적은 평균 2등급이었다 - 나는 문과였다.
담임 선생님도 이 성적에 전문대는 조금 아깝다고 하셨다.
나 역시 4년제를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터라
조금 고민했지만, 큰 아버지라는 믿을 구석이 있었으니 곧바로 안경과로 진학했다.
이것이 나의 큰 실수이다.
만족하지 못할 내 수능 성적에도 무려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정도였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신입생 OT때 얼차려를 주던 선배들을 보고 재빨리 나왔어야 했다.
본인이 싸움좀 한다며 선배랑 맞짱을 뜨는 동기를 보고 재빨리 나왔어야 했다.
대학교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삭막한 분위기의 캠퍼스를 보고 역시 나왔어야 했다.
......대학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다만 내가 입학했던 당시의 주변 상황이 좀 나와 맞지 않았던 걸로 하기로 하자고.
각설하고, 실습생 기간을 지나~ 군복무를 마치고~ 면허를 따고 졸업했다.
큰 아버지는 본인의 매장으로 와서 근무를 하라고 했지만 부담스러웠다.
다른 매장에서 일을 배우겠다고 하니, 큰 아버지는 그 후에 본인 매장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준 부장급의 급여를 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흔쾌히 알겠다고 하고 동네에 있는 다른 매장에서부터 일을 배웠다.
원래 딱 2년만 있으려고 했는데, 퇴사한다고 하니 사장이 잡더라.
그런데 큰 아버지 매장으로 가겠다고 하긴 어려워서 거짓말을 쳤다.
주 5일제 매장으로 가고 싶다고.
당시 주 5일제 매장은 정말, 아주, 매우,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이 주 6일 근무 + 월차 1일 수준이었고, 근무시간도 매우 길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라도 거짓말을 쳐야 했고,
나는 주말마다 쉬는 주 5일제 매장을 찾겠다고 해버렸는데.
사장이 오케이 해버렸다.
그것도 급여도 50만원이나 올려주면서 말이다.
회사원처럼 평일을 일하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라떼는 정말 환상속의 일이었다.
그래서 딱 6개월만 더 하기로 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내가 나간다고 하니 또 잡으면서 부장을 시켜주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찔끔 찔끔 근무가 늘어가며 어느덧 근무 4년을 채웠을 무렵.
큰 아버지 안경원이 망했다.
......중간 과정은 생략한다.
나는 실무 경력 9년차에 개인 매장 오픈을 했다.
그게 바로 오늘로부터 딱 10년 전 일이다.
그 당시 안경에 비전이 있다고 믿었다.
있는 돈 없는 돈, 심지어 부모님 돈과 은행 돈까지 끌어다 무리하게 크게 오픈했다.
오픈했을 때 어땠냐고?
말도 마. 엄청나게 바빴다.
다행히 큰 아버지가 괜찮은 거래처들은 많이 소개를 해줬었고,
구색은 제대로 잘 갖췄다.
매장 평형과 직원 숫자까지는 말하면 특정될까봐 말하기 조심스럽다.
어쨌든 오픈 3년차까지는 돈을 꽤 벌었다.
오만하게도 그 당시는 대기업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들도 우습게 보였다.
월급 300을 버니, 350을 버니..... 뭐가 중요해?
나는 성수기에는 월 1000도 넘게 버는데.
다만 세금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 순수익은 낮아지지만, 그 당시 최소 월 600~700은 가져갔었다.
오픈 4년차에 처음으로 수입차를 샀다.
삼각별. 까만 중형녀석으로.
직원도 좀 더 충원했다.
좀 쉬고 싶었거든.
오픈 3년차까지는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4년차부터는 좀 여유를 찾았다.
내 인생의 그나마 황금기가 있다면 4년차~5년차 시기였다.
동창회를 가도 동창들이 부럽다 해주고, 나 역시 우월 의식이 있었다.
이 세상은 돈 잘 버는 사람이 장땡이니까.
그리고.
6년차부터 매출의 하락이 시작되었다.
직원은 뽑기는 쉽지만, 자르기는 정말 어렵다.
법이 그렇더라.
게다가 나는 직원 생활을 오래 해봤기에 그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직원들과 회식도 매달하고, 용됸도 챙겨줬다.
일이 있다고 하면 휴무도 바로 잡아줬고.
심지어 술먹고 꽐라되어서 다음날 잠수타다가 저녁에서야 죄송하다고 연락오는 직원에게도,
이번엔 유급휴가로 처리해줄테니 오늘은 푹 쉬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직원들의 불만도 생기고......
바쁠때는 손님이 몰리니 직원 좀 더 뽑아달라, 휴일도 쉬게 해달라, 회식을 줄이고 차라리 용됸 줘라 등등.
모두 오케이 했다.
단, 그게 나중에 후폭풍이 되었다.
오픈 7년차부터 매출이 심한 급감을 하였고, 이제는 손님보다 직원이 훨씬 많았다.
피크타임을 제외하면 직원들만 멀뚱히 서서 서로 잡담을 하거나 핸드폰 게임을 했다.
서서히 적자가 나기 시작했고, 내가 참지 못했던 건.
막내 직원을 혼자 남겨두고 근무 중인 직원들이 무단 이탈해서 PC방에서 스타를 즐기고 왔을 때였다.
하필 그때 손님이 갑자기 몰렸었고 막내 직원의 실수가 많았다.
나도 그날은 출근을 안하고 쉬었기에 그 다음날 알게 되었다.
그날 매출의 80%를 막내 직원이 다 팔았고, 문제는 여벌RX랑 주문RX도 뒤죽박죽 실수가 너무 많았었기 때문에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결국 이때부터 직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오픈 8년차.
마이너스 통장의 금액이 점점 커져만 간다.
오픈 9년차.
통째로 적자다. 흑자인 달이 5월하고 6월 뿐이다.
오픈 10년차.
현재 ing형이다. 적자는 더욱 심화되어 미칠 것 같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아니, 그 부을 물 마저도 이젠 고갈되어 없다.
나는 뭘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인건비를 줄여?
하지만 어차피 작년부터 나홀로인걸.
매장 리모델링이라도 해?
이미 은행빚이 어마어마한데 또 돈을 쓸수는 없는걸.
하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직업 선택 자체가 문제인가.
오픈 1년차~5년차까지 이 안경원을 인수하겠다는 사람만 4명이었다.
차라리 그때 팔았어야 했나 생각이 든다.
웃돈 1억을 준다고 본인에게 팔라고 했을때 무슨소리냐며 거부했던 내 자신이 밉다.
지금은 타업종에라도 바닥권리금이나 받고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힘들다.
장사가 잘 되는 안경원이 굉장히 부럽다.
그건 그야말로 달인의 매장이겠지.
엄청난 무기를 가진, 그야말로 초고수.
나는 하수다.
이 바람 앞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한 촛불 같은 하수.
어느새 나이만 먹어버린 내 자신이 안쓰럽다.
마지막 한 잔만 비우고 눈 좀 붙여야겠다.
내일도 출근해서 매장 청소 해야하니까.